양평의 문화유산
이호민 영정 외 일괄유물
카테고리
도지정 문화유산
작성일
2016-06-02
조회
8
소재
옥천면 신복리
분류
경기도문화재
문의
031-770-2471




시대 : 조선 인조 13년 (1635)
이호민(李好閔, 1553~163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 남곽(南郭), 수와(睡窩)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淑琦)의 증손이며 이천현감 이국주(李國柱)의 아들이다. 선조 17년(1584)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를 명받을 정도로 문재(文才)가 뛰어나 응교(應敎), 전한(典翰), 집의(執義)를 거쳐 임진왜란 때는 이조좌랑으로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扈從)했으며, 랴오양[遼陽]에 가 명나라의 지원을 요청하여 평양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웠다. 1595년 부제학으로 명나라의 외교문서를 전담했으며, 참찬관을 거쳐 동지중추부사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대제학․좌찬성을 거쳐 선조 37년(1604)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연릉군(延陵君)에 봉해졌고, 그뒤 부원군(府院君)으로 진봉되었다. 1608년 선조가 죽자 적서(嫡庶)의 차별 없이 맏아들을 즉위시켜야 한다는 입장론(立長論)을 주장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즉위를 반대했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고부청시승습사(告訃請諡承襲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옥사에 연루되었고, 1615년에는 정인홍(鄭仁弘) 등이 입장론을 거론하여 그를 귀양보낼 것을 간하였으나 광해군이 듣지 않았고 그는 7년간 교외에서 대죄(待罪)하였다.
신도비문에 의하면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선산이 있는 향리인 이곳 옥천면 신복리에 송현초당을 짓고 은거하였으며 세상을 떠난 뒤 청백리에 올랐다. 시호는 문회(文僖)이며 저서로는 『오봉집(五峯集)』 16권이 있다. 경북안동 지례(知禮)의 도동향사(道東鄕祠)에 제향되었다.
이호민 영정 외 일괄유물은 공신 책록 당시에 제작된 영정과 영정함, 교지와 교지함 등 6점이 함께 보존되어 있다. 영정의 크기는 91×163.5㎝이다. 오사모와 정1품 단령을 갖추어 입고 채전 위 교의에 앉은 모습으로 17세기 공신초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교지 1건은 사후 1635년에 수여된 시호 교지이며, 교지 2건은 1604년 호성공신 책봉 당시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윤부인과 허부인에 대한 교지이다. 영정함과 교지함은 배나무에 삼베를 입혔고 두껍게 옻칠되어 있다. 여의두식 경첩과 팔엽국화무늬 앞바탕 장식이 있고 판과 판에도 팔각국화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참고문헌
『양평군지』(양평군, 1991)『양평문화유적총람』(양평군, 1995)『양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토지박물관, 1999) 『경기금석문대관』(경기도, 1994)
[교통정보]
옥천면 소재지에서 351번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왼쪽으로 37번 국도와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37번 도로를 따라 가평방향으로 2㎞정도 가다가 서쪽으로 하천을 건너면 신복 1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신복 2리(말골)과 연결되는 마을도로를 따라 약 200m 지난 곳의 도로변에 신도비가 있고, 이 신도비의 동쪽 야산 능선을 따라 150m 올라간 곳에 이호민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