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문화유산
노산사지
카테고리
도지정 문화유산
작성일
2016-06-02
조회
6
소재
서종면 노문리
분류
경기도문화재
문의
031-770-2471



[소 개]
종목 : 시도기념물 43호
시대 : 1954년 재건
분류 : 사지
수량 : 일원
지정일 : 1977.10.13
소유자 : 사유
관리자 : 장기덕
노산사는 이항로의 높은 학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말기에 건립되었던 사우로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4년에 유림들에 의해 현재의 사우가 재건되었다. 주자(朱子)를 주향으로 하고 동쪽에는 송시열(宋時烈)을, 서쪽에는 이항로(李恒老)를 제향하였다.
제향인물인 이항로(李恒老, 1792~1868)는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로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이며, 본관은 벽진(碧珍)으로 이회장(李晦章)과 전의이씨 사이의 외아들로 서종면 벽계(蘗溪)에서 태어났다. 화서(華西)라는 호는 그가 살던 벽계마을이 청화산(靑華山) 서쪽 10여 리에 위치한 관계로 문하들이 『화서선생(華西先生)』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순조 8년(1808)에 소과에 합격하였으나 당시 권력층에 있던 고관이 과거급제를 구실로 자기 자식과 친분 맺기를 종용하자 이에 격분하여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후 학문에만 전념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힘을 쏟았다. 그 뒤 그의 학덕이 알려져 헌종 6년(1840) 휘경원(徽慶園)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향리에서 강학을 위하여 여숙강규(閭塾講規)를 수정하여 실시하였다. 이 무렵 한말의 위정척사론자로 유명한 최익현(崔益鉉)ㆍ김평묵(金平黙)ㆍ유중교(柳重敎) 등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칠십이 넘은 노령으로 입궐하여 주전론을 적극 주장하였으며, 이어 공조참판으로 승진되고 경연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경복궁 증축 등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한 병인상소로 인해 대원군의 노여움을 사서 삭탈관직 당한 뒤 낙향하였다.
그는 성리학자일 뿐 아니라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염려한 우국지사로서 그의 문하에서 위정척사 운동의 중심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며, 문집으로는 『화서집(華西集)』이 있다. 묘는 서종면 정배리 퉁점골에 있다.
현재의 노산사는 경내 264㎡ 규모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전면에 제월대라고 새긴 자연석과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교통정보]
서종면소재지에서 363번 도로를 타고 청평쪽으로 5.5㎞가다가 다시 오른쪽 86번 도로를 타고 5.5㎞가면 노문초등학교가 나온다. 여기서 10번 도로를 타고 1㎞가면 오른쪽으로 노문리 벽계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어귀에는 이항로가 생전에 양헌수, 김평묵, 최익현, 유인석 등 많은 선비들을 가르치던 생가가 있고, 노산사지는 생가에서 동쪽으로 약 50m정도 떨어진 야산 언덕 위에 정남향으로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