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문화유산
김이원 신도비
카테고리
일반문화유산
작성일
2016-06-02
조회
8
소재
강하면 전수리
분류
일반문화재
문의
031-770-2474




시 대 : 조선 영조 28년(1752) 건립
김이원(金履元, 1553~161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수백(守伯), 호는 소암(素菴)이다. 일선위 김극빈의 아버지로 선조의 아홉번째 딸인 정근옹주(貞謹翁主)가 며느리이다. 선조 16년(1583)의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수찬․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26년 의주목사(義州牧使)로 부임하였을 때 전국적으로 심한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들이 많았는데, 의주읍 만은 명나라로부터 곡식을 들여왔기 때문에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선임자 유희서(柳熙緖)가 명나라 군사에게 모욕을 받고 사임한 까닭에 모두 그를 걱정하였으나 명나라 병사들을 잘 다루어 경기도내 행정을 바로잡았다.
광해군 4년(1612) 계축옥사를 잘 다스렸다하여 익사공신(翼社功臣)에 오르고, 숭양부원군(嵩陽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병조판서․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나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훈작이 추탈되었다.
신도비(총높이 223㎝, 폭 상 68㎝하 66㎝, 두께 24㎝)는 이현석(李玄錫)이 글을 짓고, 이광사(李匡師)가 글씨를 써서 영조 28년(1752) 건립되었다. 전체적으로 비좌와 이수의 규모에 비해 비신이 작은 편이다. 비신과 이수는 하나의 돌이며, 비신은 검게 산화되었다.
전,좌,우면은 마모되어 일부만 알아 볼 수 있는 반면, 후면은 비교적 뚜렷하다. 전면 상단에 “朝鮮國贈領議政行兵”, 후면 상단에 “曹判書金公神道碑名”이라 전액했다. 이수는 구름문양 속에 두 마리 용이 서로 앞 발을 들어 움켜잡고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비좌는 전,좌면에 두 개씩의 안상문이 있고, 우,후면은 마모되어서인지 아무런 무늬가 없다. 비좌 상부는 복련문을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ꋪ 참고문헌 : 『양평군지』(양평군, 1991), 『양평문화유적총람』(양평군, 1995), 『양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토지박물관, 1999)
[교통정보]
강하면소재지에서 성덕리 방향으로 난 길로 1.5㎞ 가다보면 강하면 전수리의 벽돌공장이 나온다. 김이원 신도비는 이 공장 뒤의 구릉 아랫쪽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