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문화유산
이유록 선생 신도비
카테고리
향토유적
작성일
2016-06-02
조회
8
소재
용문면 조현리 산48-13
분류
향토유적
문의
031-770-2474

-종목 : 양평군 향토유적 제1호
-시대 : 조선후기, 1994년 양근리에서 이건
이유록(李綏祿, 1564~1620)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유지(綏之), 호는 동고(東皐),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첨정(僉正) 이극강(李克綱)의 아들이다. 이유록은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자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李敬輿)이다.
선조 19년(1586)에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서북면 체찰사(西北面 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으로 활약했다. 이후 광주목사․봉산군수․상주목사 등을 역임하면서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광해군 9년(1617) 폐모론에 반대, 사직하고 고향인 양근으로 은퇴하여 이원익․정엽(鄭曄) 등과 교류했으며, 뒤에 여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광해군 12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신도비문에 의하면 양근군 백운봉 아래(현 양근리)에 장례를 치루었다 한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유록 신도비(총높이 273㎝, 폭 81㎝, 두께 20㎝)는 1994년에 양근리 192번지에서 현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비는 장방형의 백색화강암으로 비좌와 비신 및 쌍용의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좌는 상부를 부드럽게 처리 하였으며 이수는 검게 산화되어 있는데 전면에는 구름무늬와 두 마리 용이 중심부위 여러 곳에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신은 전․후면에 비문이 있으며, 상단에 횡으로 『贈領議政李公神道碑銘』이라 했고, 비제(碑題)는 『有明朝鮮國贈領議政神道碑銘幷序』라 음각되어 있다. 건립연기가 없어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다.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찬하고, 윤문거(尹文擧)가 글씨를 썼으며, 허목(許穆)이 전(篆)을 했다. 비문에는 이유록의 약력이 언급되었으며 선정을 베푼 일화와 함께 세상을 슬퍼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독송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참고문헌
『양평군지』(양평군, 1991), 『양평문화유적총람』(양평군, 1995), 『양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토지박물관, 1999), 『경기금석문대관』(경기도, 1994)
[교통정보]
용문면소재지에서 6번 도로를 타고 홍천방향으로 5㎞정도 가서 331번 도로를 타고 다시 2㎞정도 가면 4번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타고 2㎞ 쯤 가면 조현리가 나오는데 이유록 신도비는 조현리의 전주이씨 묘역 입구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