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문화유산
윤승길 선생 묘
카테고리
향토유적
작성일
2016-06-02
조회
6
소재
용문면 조현리 산346
분류
향토유적
문의
031-770-2474


-종목 : 양평군 향토유적 제27호
-시대 : 신도비-2001건립
윤승길(尹承吉, 1540~161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일(子一), 호는 남악(南岳),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의 아들이다. 명종 19년(1564)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 장령(掌令) 등 을 역임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는 귀성부사(龜城府使)로서 병사모집과 군량미조달 등에 공을 세웠다. 이듬해 강원도 관찰사에 있을 때에는 전란에 시달려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고 장정을 뽑아 기효신법(紀效新法)으로 훈련을 시켜 명나라 지휘관으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았다. 이어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선조 33년(1600) 형조판서 겸 도총관에 올랐고, 같은 해 자신의 딸을 선조의 일곱번째 아들인 인성군(仁城君)과 혼인시켰다. 한성부우윤, 좌참찬을 역임하고 선조 38년(1605)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광해군 1년(1609) 해선군(海善君)에 봉해졌다. 광해군 8년(1616)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는 예관과 조관을 보내 장례를 치루었다.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묘는 정부인 금성 박씨와 합장묘로 봉분 하단에 40cm 높이의 호석이 돌려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총높이 165cm, 폭 59cm, 두께 20cm)와 상석, 향로석, 그 좌우에는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었다. 묘비는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묘비의 전면에는 『資憲大夫 議政府左參贊兼知春秋館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贈謚○公尹承吉之墓 貞夫人 錦城朴氏祔左』라고 기록되어 있다.
묘소에서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신도비(神道碑)는 2001년11월12일에 난간 세로 5m ·가로 6m, 용관(龍冠) 폭 120cm·두께 90cm·높이 100cm, 비석(碑石) 폭 86cm·두께 53cm·높이 245cm·, 거북바탕의 비좌 폭 190cm·높이 103cm의 규모로서 신도비문은 병조참판 이서우(李瑞雨)가 찬한 비원문(碑原文)을 각자수립(刻字竪立) 하였다.
[교통정보]
6번 도로에서 용문사로 진입하고 덕촌교량에서 우회전, 조현교량에서 좌회전, 조현회관앞에서 150m 정도 직진하여 막골로 우회전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