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문화유산
송현리 효자 정문
카테고리
향토유적
작성일
2016-06-02
조회
9
소재
지제면 송현 813
분류
향토유적
문의
031-770-2471



-종목 : 향토유적 제 21 호
-시대 : 조선 고종 19년(1882) 명정
이 정려는 효자 강릉 최씨 최광악(崔匡岳)과 최병배(崔秉培) 부자의 양대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이러한 사실은 1899년에 편찬된 『지평현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정려는 고종 19년(1882)에 지평현의 유림 73명이 임금께 상소하여 명정받아 지평현감이 직접 감독하여 9월에 완공되었다.
최광악(崔匡岳, 1756~1816)의 자는 사고(士高), 본관은 강릉으로 아버지 최흥후(崔興垕)와 어머니 문화유씨 사이에서 3남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병환에 걸려 위독한 노모가 닭고기가 먹고싶다고 하자 동짓달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4km 떨어진 월산리까지 가서 닭을 구해 소원을 풀어드렸고, 또 며칠 후 물고기가 먹고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붕어 세 마리를 낚아 모친을 봉양하였다고 한다.
최병배(崔秉培, 1778~1856)는 최광악과 성주이씨 사이의 3남 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최광악이 세상을 떠나자 집에서 약 2km 떨어진 묘소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 효성이 너무 지극한 나머지 호랑이도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식사 때마다 등에 업어 왕래케 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정문은 팔작지붕에 삼문(三門)형태를 갖추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이 정문의 좌측실은 마루를 깐 낮은 누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전체적인 건물규모는 정면 7.19m, 측면 2.43m이다. 중앙의 출입문 상단에는 최광악이 고종 19년에 명정받았음 나타내주는 「孝子贈朝奉大夫崔匡岳之門 高宗十九年壬午九月日 命禎」이라고 새겨진 현판(가로 175㎝, 세로 38㎝)과 정문의 우측에는 같은해 최병배도 명정받았음을 나타내는 「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崔秉培之門 高宗十九年壬午九月 日 命旌」이라 새겨진 현판(가로 175㎝, 세로 35㎝)이 있다.
[교통정보]
지평면소재지에 있는 지평역 사거리에서 331번 도로를 따라 북으로 약 5km 지난 곳에 산현 마을이 있다. 정문은 도로 서쪽의 산현마을 어귀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