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문화유산
회현리 충신 열녀문
카테고리
향토유적
작성일
2016-06-02
조회
61
소재
양평읍 회현리 266
분류
향토유적
문의
031-770-2474




-종목 : 양평군 향토유적 제3호
-시대 : 조선 인조 5년(1627) 명정, 정조 13년(1789) 명정
이 정려는 충신 유희진(柳希津)의 충절과 유성중(柳聖中)의 부인 열녀 선산 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유희진이 인조 5년(1627)에 명정을 받아 정려를 건립하였고, 정조 13년(1789)에 유성중 처 선산김씨가 명정을 받자 유희진의 정려에 현판을 같이 모신 것이다. 충신 유희진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유관의 4대손으로 아버지 유오(柳塢)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의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유희진은 회현리 가소마을 입향조이기도 하다.
유희진은 임진왜란 당시 함흥판관으로 재임하던 중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당시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여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던 시기였는데, 왜적은 유희진에게 왕의 거처를 대라며 갖은 고문을 다 하였다. 그러나 끝내 굽히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가 혀를 깨물고 자결함으로써 충신의 표상이 되어 인조 5년(1627) 명정받았다.
열녀 선산 김씨는 유성중(柳聖中, 계해~병오)의 부인이자 김우흠(金右欽)의 딸로 정절이 후대에 길이 모범이 될만하여 정조 13년(1789) 명정을 받았다.
현재 건물은 근래에 새로 보수한 것으로 정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좌․우 측면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이 정려 내부 상단에는 유희진이 1627년 명정 받았음을 나타내는 “忠臣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通訓大夫咸興判官柳希津之門 上之五年 命旌閭” 란 명정현판이 걸려있고, 하단에는 유성중의 처 선산 김씨가 정조 13년에 명정 받았음을 나타내는 “烈女學生柳聖中妻孺人善山金氏之門 上之十三年 己酉命旌” 이란 명정현판이 걸려있다.
후손의 전언에 의하면 6.25전쟁 직전까지도 유품으로 유희진의 갑옷 등이 전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직후 이 가소마을에 염병이 돌자 그 이유가 유품때문이라는 말이 동네에 돌자 불에 태웠다고 한다.
[교통정보]
양평읍소재지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여주 방향으로 4㎞정도 가면 흑천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남한강의 지류인 흑천을 따라 서쪽으로 약 1.5km 가면 가소 마을이 나오는데 충신열녀문은 가소 마을의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한다.